S E A S O N
SERIAL SHORT DIARY BOOK GUEST


  오이카와 토오루의 집은 남향으로 햇볕이 거실까지 깊게 드는 곳이었다. 따뜻한 아침 햇살이 오이카와가 덮고 있는 침대까지 내려오다 그의 이마에서 미끄러졌다. 아늑하고 조용한 주말, 낯선 목소리가 집안을 울리며 아침을 깨웠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이카와 씨.”

“응, 좋은 아침.”


  오이카와는 졸음이 한껏 묻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목이 잠겨 목소리가 다 나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아침 일곱 시였다. 주말 치곤 매우 일찍 일어났다. 다시 자기 전에 물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며 서서히 눈을 뜨며 옆을 바라보았을 때, 오이카와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하얀 티와 까만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남자 아이가 마치 고양이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나, 미성년자와? 게다가 남자? 그럴리가 없다. 어제 분명 집에 일찍 들어와서 토비오랑 놀고 잤는데. 그는 잠에서 다 깨지 못한 상태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누군가와 무척 닮은 얼굴이라고 생각한 순간, 남자 아이는 팔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쭉 늘리며 기지개를 폈다. 정말 고양이 같은 동작이었다. 


  잠깐만, 고양이?


“너너, 누구야?”

“토비오입니다.”


  평범하고 사랑스러웠던 주말 아침이 한 마디에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말린 티를 주섬주섬 내리던 오이카와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 토비오쨩은 어디 가고 이런 시커먼 남자 아이가 나타난거야?”

“토비오쨩이라고 좀 안 부를 수 없습니까.”

“이건 꿈이야. 다시 자야겠어.”


  제 옆에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 아이를 빤히 쳐다보던 오이카와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남자 아이가 다가와 오이카와의 어깨를 잡고 혀를 내밀었고, 그 순간 오이카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뺨에 촉촉하면서 까끌까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고양이를 처음 키운 오이카와는 얼마 전 고양이의 혀는 까칠하다며 웃었던 기억이 있었다. 분명 인간의 혀가 아니었다. 


“토비오‥, 우리 토비오는 어딨지?”

“자꾸 왜 절 찾으시는 겁니까. 전 여기있다구요.”

“말도 안 돼. 거짓말 치지 마.”


  이상한 표정으로 오이카와를 바라보던 남자 아이는 곧 시큰둥하게 침대에서 눈을 깜빡거렸다. 뭘 이상하게 쳐다보는거야. 지금 이상한 건 네 쪽이라고. 오이카와는 서둘러 집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토비오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토비오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먹이 등이 그대로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오이카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며 설명을 해보라며 남자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남자 아이가 조그맣고 얇은 입술을 움직여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면 인간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딱 태어난 지 3개월이 되는 날이었어요.”

“뭘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고 있어.”


  어, 그래. 알겠어. 이게 일단 꿈이 아니라는거지. 오이카와는 의아한 눈길로 다시 남자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잠이 덜 깬 것이 아닐까. 요즘 이어져 온 야근으로 피곤한 몸이 환각 상태를 불러 일으킨 것일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한 오이카와는 이내 큰 베개에 얼굴을 비비는 토비오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고양이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곧 무개를 잡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자 베개와 싸움이라도 하는지, 으항, 히익, 소리가 나며 먼지가 폴폴 날렸다. 그러면 안 돼. 오이카와가 제지하자 남자 아이는 곧 짙푸른 눈동자를 크게 뜨며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오이카와 씨! 배구 보러 가면 안 됩니까? 인간 배구 너무 재밌습니다.”

“오늘 경기 하는 날이었던가, 아니 잠깐.”


  이 모습으로 무슨 배구를 보러 간다는 거야. 그리고 누가 배구 경기 보러 데려다 줄 줄 알고? 오이카와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침대에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매와 오똑하게 솟은 코는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어 중학생 쯤으로 보였다. 토비오의 털색을 닮은 새까만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내려오고, 하얀 얼굴에 고양이 수염은 없다. 오이카와는 토비오가 어질러 놓은 베개를 정리한 후, 이불 밖으로 튀어나오며 아이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정말로 털이 없다. 말랑말랑한 살결을 주욱 잡아 늘리자 토비오가 윙크를 하듯 한쪽 눈을 감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오이카와 씨, 아파요. 


“넌 그럼 다시 고양이로 돌아갈 수 없는거야?”

“…제가 돌아갔으면 좋겠습니까?”

“네가 돌아가지 않으면 난 한 사람을 부양하는 거라고!”

“어떤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양이로 변하기도 하고, 다시 인간으로 변하기도 하는. 그리고 저 아직 꼬리도 있어요.”


  토비오는 눈을 번뜩이며 길고 까만 꼬리를 바지 뒷춤에서 꺼냈다. 이게 바로 내 꼬리다, 하는 자랑스러운 눈빛이었다. 완전히 어린 아이군. 오이카와는 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잡히지 않으려 토비오가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고양이였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얘 고양이가 아니라 차라리 고양이를 닮은 돼지나 강아지가 아닐까. 생긴 것만 고양이였지 먹는 양이나 하는 짓을 보면 고양이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토비오는 곧 이불을 개는 오이카와를 보며 재잘거렸다. 


“오이카와 씨! 저는 이게 뭔가 했거든요. 근데 제 꼬리예요. 꼬리는 6개월이 지나면 제 마음대로 숨길 수 있어요!”

“어, 그래. 정말 대단하구나.”


  어쨌든 다시 고양이로 변하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자. 오이카와는 머릿속으로 찬물을 부으면 변하는 만화를 떠올렸다. 토비오를 한번 목욕이라도 시켜 볼까? 토비오가 다시 고양이로 변할 때까지 한동안 이와쨩은 집으로 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설명을 듣고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망할 오이카와. 여친한테 차이더니 하다 못해 남자 아이를 데려오다니, 네가 사람이냐. 잔소리만 듣겠지. 이와쨩은 너무해. 


  오이카와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다 다시 토비오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공을 찾아 놀고있다. 저 장난꾸러기. 생각해보니 토비오가 인간으로 변했다면 해줄 말이 가득이었다. 늦게 오면 심술이라도 부리는듯이 머리를 헝클이며 괴롭히지 않나, 얼마 전에는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밥그릇도 엎었지. 이 놈 자식! 오이카와는 성큼성큼 토비오에게 다가가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스읍, 혀를 차면서 토비오의 손을 잡고 툭툭 건드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였다. 


“맞아! 너 어제도 커튼 뜯었지. 진짜 혼날래?”

“그, 그건, 바람에 커튼이 부니까 신기해서….”


  오이카와는 어느새 자신의 고양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곧 배고프다는 소리에 오이카와는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먹던 사료 줄까. 오이카와의 물음에 토비오가 단호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료도 좀 맛있는 거 주세요. 그거 맛없습니다. 준 게 어디람. 오이카와는 밥을 먹어보고 싶었다며 부엌으로 졸졸 쫓아오는 토비오를 막으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평일 내내 장을 보지 않아 텅텅 빈 냉장고에는 먹을만한 것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장을 보러 가야겠군. 이래저래 귀찮은 일 투성이였다. 오이카와는 성가시게 자신도 나가겠다며 문앞까지 쫓아오는 토비오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이상하고 귀찮은 주말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