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E A S O N
SERIAL SHORT DIARY BOOK GUEST




  보름만에 만나는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싸우는 이유는 단순했다. 직업도 인간관계도 전혀 다른 둘은 행동반경이 겹칠래야 겹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름이나 못볼 수 있지. 한번 연애를 하면 온 사랑을 쏟아 부어 연애를 하던 오이카와는 핸드폰이 없다시피 사는 카게야마를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주일 넘게 보지 못한 애인이 벌건 대낮에 모르는 놈과 같이 있다니. 오이카와는 카페에서 자신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카게야마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까 카게야마 옆에 있던 그 망할 국가대표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시와카인가 뭔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토비오 옆에서 당연하게 지갑을 꺼내 계산하고 있고. 오이카와는 보자마자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카게야마의 손을 이끌고 나왔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차 앞에서 오이카와가 말을 하기도 전에 대답했다. 싫어. 안 가. 너 왜 막무가내로 나 끌고 와? 


“타.”

“싫다고 했잖아!”

“타라고!”


  오이카와는 곧이라도 집어 삼킬 것처럼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카게야마를 노려보았다. 잘한 게 뭐가 있다고 노려봐? 오이카와가 화내는 이유를 대충 짐작한 카게야마는 조수석에 앉으며 안전벨트를 맸다. 그리고는 운전 내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오이카와의 오피스텔이었다. 집을 합치자고 자주 말을 한 것 같은데 카게야마는 그럴 때마다 대답을 빙빙 둘러댔다. 스케줄도 다른데 따로 살자. 어, 알았어. 그러면 오이카와는 서운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카게야마는 그런 오이카와가 귀여워서 일부러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오이카와의 표정이 너무 굳어있어 아무말도 꺼내지 못했다. 


  문이 닫히자마자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노려보았다. 구단이랑 얘기라도 하고 온 건지 오늘따라 단정하게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운 카게야마를 보고 오이카와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입을 열자 싸움이 시작되었다. 


“연락도 하나 안 하면서 그 놈이랑은 왜 있어?”

“바빴잖아.”

“연락 할 시간도 없이 네가 바빠?”

“어, 바빠.”

“시즌 끝났는데 뭐가 바빠. 너 나랑 사귀는 거 맞아?”

“원래 경기 없을 때가 더 바빠.”

“야, 그 새끼는 전에 사귀던 새끼라며. 근데 왜 내가 오해할거란 생각은 안 해. 너 나 안 만날 땐 그 새끼랑 붙어있냐?”


  아까부터 자꾸 야야, 거리는데 카게야마는 곧이라도 오이카와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이게, 진짜 얼굴로 먹고 사는 애만 아니었어도. 어디를 둘러봐도 제 두살 후배 중에 오이카와만큼 싸가지 없게 구는 놈은 없었다. 넌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망할 놈아. 


  카게야마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와 싸우면 딱 절반은 제 잘못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토오루의 잘못이었다. 둘다 자존심은 높아서 한번 싸우자고 덤벼들면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들을 온갖 쏟아 붓다가 후회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말려들지 말아야 했다. 


“네 멋대로 상상하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만나지 마.”

“…네가 뭔데 만나지 말라고 그래? 야, 나도 한마디만 해도 되냐? 나는 너 전 여친 만날 때마다 아무 얘기도 안 했어. 너 안 그럴거 아니까. 오해하기 미안해서. 네가 구속한다고 생각할까봐! 근데 너는 내가 운동 말고 다른 짓 안 하는거 잘 알면서 나를 왜 그딴 취급해?”

“…….”

“그리고‥, 연락 없었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다른 핸드폰 좀 확인해.”


  말려들지 않기는 무슨. 그대로 똑같이 말을 돌려준 카게야마가 나가려고 문고리를 돌리자 뒤에서 오이카와가 손목을 붙잡아왔다. 


  카게야마의 말을 듣고 얼마 전 사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이 물에 빠졌던 것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미안해.”


  카게야마를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이 조급해서, 또 연락이 안 되는 게 불안해서 카게야마가 다른 남자랑 있는 걸 보자마자 머리가 돌아 버렸다. 


“못된 말 해서 미안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동그란 뒤통수를 보며 한번 더 사과했다. 그러자 오이카와에게만 마음이 약한 카게야마는 뒤를 돌아 팔을 들어 오이카와를 끌어 안았다. 아직 화가 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으니까. 아까 잔뜩 날을 세울 땐 언제고 또 자신의 소리에 시무룩해져 강아지처럼 축 쳐진 오이카와를 보자 마음이 스르륵 녹아버리는 것 같다. 오이카와는 아까 대문에 등이 부딪혔던 카게야마를 보고 이를 악 물었다. 그러지 말걸. 화나도 밀치진 말걸. 후회와 자신에게 드는 한심한 감정이 뒤엉켜 엉망이 되어버렸다.  


“나 더 사랑해줘.”


  오이카와는 그 말과 동시에 입을 맞췄다. 숨을 쉴 틈도 없이 몰아 붙여서 카게야마는 이미 자신의 바지를 벗기고 속옷 안에 손을 밀어 넣는 오이카와의 손을 잡았다. 토오루, 토오루! 오이카와를 불러봐도 잘 말린 속눈썹이 파르르 떨릴 뿐, 입술은 멈출 줄을 몰랐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조금 젖히다 이를 꽉 물며 오이카와의 손 안에서 사정했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래도 전 애인이랑 같이 있는 게 달가울 애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집요하게 괴롭히던 오이카와는 결국 침대 위로 자리를 옮겨 카게야마를 눕혀놓고 속옷을 완전히 벗겨 놓은 후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몇 번을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감각에 카게야마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 내 보험료가 얼만지나 알아? 평소라면 그렇게 물었을 카게야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눈치가 빠른 오이카와는 바로 바쁘게 움직이던 손으로 턱을 쥐고 자신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카게야마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토오루, 나 너 많이 사랑하는데..”

“…….”

“여기서 얼마큼 더 사랑하라는거야.”


  이 욕심쟁이야. 


  오이카와는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시 깊게 입을 맞췄다. 잘 표현하지 않지만 서툴게라도 진심을 전하는 카게야마의 성격을 알았기에 오이카와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면 카게야마는 독심술이라도 하는지 오이카와의 마음을 알고 앞머리도 쓱쓱 넘겨주고, 등도 토닥여줬다.  






*






“토오루, 자?”


  한풀 꺾인 목소리로 오이카와를 부른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뚝 떨어졌다. 연하랑 사귀는 거 정말 힘들다. 새벽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애인은 옆자리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이불을 끌어 올려주며 카게야마는 잔잔하게 웃었다. 여자들의 공통 이상형이라는 연하 애인은 인터뷰에서 한껏 여유로운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속 좁고 심술 가득한 욕심쟁이일 뿐이었다. 


  문득 오이카와를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났다. 에이전시가 제안한 광고 중에 특이한 것이 있었다. 카게야마가 지금껏 찍은 브랜드들은 단독 모델이었는데, 스포츠 브랜드로 유명한 R사에서는 요즘 브로맨스가 대세라며 아무렇지 않게 일정 개런티와 카게야마가 요구한 사회 기부 조건을 걸고 계약을 걸어 왔다. 연예인을 잘 몰랐기 때문에 촬영장에 갈 때까지 자신이 오이카와 토오루를 만날 줄 몰랐다. 그리고 그 날 카게야마는 몇 년이고 자신을 뒤흔들 상대와의 첫 만남을 절대 잊지 못했다.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잘생기고 아름다웠던 오이카와 토오루를. 


  매니저에게 들었을 땐 분위기 메이커라고 들었는데 촬영 내내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카게야마는 촬영이 마무리 될 쯤 넌지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촬영이라 그런걸까. 아까 자신을 보는 눈빛이 뜨거웠는데, 착각이었나보다. 그리고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던 그는 스탭들이 정리를 하는 동안 구석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카게야마를 찾아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오랜 촬영으로 조금 지친 상태였다. 스튜디오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숨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씨 아직 안 가셨어요?’

‘저 가벼운 사람 아닌데.’

‘아뇨. 저 오이카와씨를 가벼운 사람으로 본 적‥,’

‘입 맞출게요.’


  그리고 오이카와의 커다란 눈동자가 크게 다가오고 곧바로 입술이 닿았다. 남자 치고 예쁘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심장 깊숙이 박혔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찾아온 적 없는 강렬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 날 이후, 오이카와와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조심스럽게 문자를 하면서 알게된 새로운 사실은 오이카와가 연하라는 점이었다. 카게야마는 처음 자신의 나이를 말했을 때 믿지 않는 오이카와를 보며 인터넷에 쳐보라고 곧바로 말해주었다. 


‘왜 이렇게 동안이에요? 말도 안 돼.’


  오이카와는 확실히 어린 편은 아니었다. 배구 빼고는 여러가지로 미숙한 카게야마는 달리 오히려 똑부러지는 편에 속했다. 그래도 가끔씩 제 나이가 걸리는 오이카와가 말도 안 되는 질투나 투정을 부릴 때마다 카게야마는 그 점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평상시에 나오는 토오루는 TV에 나오는 것과는 훨씬 다르고, 좀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제 한정일지도 모르겠지만. 토오루는 제가 이것저것을 원하면 떼를 쓰는 것으로 보이진 않을까 걱정하며 자신을 챙기는 쪽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카게야마는 늘 알면서도 넘어갔다. 


“일어났어?”


  거실로 나오자마자 오이카와가 카게야마를 찾았다. 머리 부스스하게 뜬 거 귀여워. 토오루, 이리와. 소파를 툭툭 두드리자 고개를 끄덕거리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다가온 오이카와가 옆에 앉았다. 


  오이카와가 가져다 주는 물을 마시며 카게야마는 조금 뒤척였다. TV를 트니 오이카와가 주연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재방송 중이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를 만난 뒤에 태어나서 드라마라는 것을 처음 챙겨보았다. 저녁 운동 뒤에 정각에 맞춰 시청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운동을 하는 것처럼 카게야마는 꼬박꼬박 드라마를 챙겨보았다. 제가 알던 토오루가 아니라 조금 생소한 기분이었지만.  


“토비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차라리 형이라고 불러.”

“토비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으며 소파에 앉아 있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오늘 쉬는 날이야? 응. 운동 할거야? 해야지. 운동 선수인 애인에게 체력이 뒤처질까봐 걱정이라는 연예인 오이카와는 최근 카게야마를 따라 운동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토비오, 너무 부지런해. 네가 스케줄 나가는 것처럼 운동이 내 일인데, 어떡해. 


“침대 위에서 하면 안 돼?”

“뭐라는거야.”


  이것도 운동이야. 그 말을 듣고 픽 웃은 카게야마가 오이카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자 곧바로 티셔츠 안으로 손을 들어왔다. 


“토오루.”


  무심하게 야, 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불러주는 걸 훨씬 좋아했다. 


“아프게 하면 안 돼?”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의 뺨에 입을 맞췄다. 서툴렀던 입맞춤도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오이카와는 바로 카게야마를 소파 위로 눕혔다. 일어나지 얼마 되지 않아 흐트러진 앞머리가 눈에 보였다. 여기 한 가닥만 삐죽 나온거 얼마나 귀여운 지 모르지. 몰라. 카게야마는 조금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벌건 대낮에 이런 짓을 하다니, 부끄러워. 


“여기서 하면 불편해.”

“응?”

“모르는 척 하지 마, 젊은 놈아. 빨리 나를 침대 위로 옮겨.”


  오이카와를 힐끔 노려보며 카게야마는 커다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