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E A S O N
SERIAL SHORT DIARY BOOK GUEST



  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짜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쓰겠다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 그래도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서정주, 시집 《질마재 신화》(1975)






  달빛이 너울거리는 밤, 싱그러운 꽃 향기가 피어난 정원을 누군가 바쁜 걸음으로 헤쳐 나갔다. 발걸음을 옮기는 이는 여인 못지 않게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얼굴을 한 신랑이었다. 혼례날 심어 놓은 소나무에서 나는 솔잎 향도 지나친 채, 신랑은 신부가 잠들 새라 서둘러 신방新房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 그림자에 폭 젖은 신혼방에서 신부는 홀로 신랑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엉거주춤하게 다홍치마를 여맨 신부는 엎드려 사못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었다. 귀신과 도깨비들이 얼씬 못하도록 개암기름으로 켠 호롱불은 작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어느새 책을 놓아버리고 고개를 꾸벅꾸벅 떨어트린 신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꺼풀을 살그머니 떴다. 


“왜 이렇게 늦게 오십니까.”


  투정을 부리듯 말하는 신부의 입이 모가 난 것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와있어 신랑이 잔잔하게 웃었다. 많이 기다렸어? 신랑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혼례 내내 이고 있던 장신구를 바닥에 다 내려놓은 신부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작은 바람에 찰랑거리며 흩어졌다. 신랑은 버선을 벗고 신부 곁으로 다가가 내려 놓은 책을 들어 보았다. 


“뭘 읽고 있었어?”

“시집입니다. 신부를 놓고 떠나간 신랑이 40년이 넘은 후에야 오해를 풀었다는 내용입니다. 오이카와상도 이렇게 저를 놓고 가면 어떡합니까?”


  상상만 해도 억울한듯 볼멘 소리를 하는 신부의 목소리가 바닥을 향해 축 늘어졌다. 신랑은 그 물음에 크게 웃었다.   


“낭군, 술 많이 드셨습니까? 볼이 빨갑니다.”

“일년 치 술을 오늘 다 마신 것 같다.”


  신랑의 볼에 살짝 떠오른 홍조를 보며 신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했다. 신랑은 이내 두루마기 자락 안에서 작은 손수건을 꺼냈다. 삐뚤어진 자수가 새겨진 손수건의 매듭을 고운 손으로 풀자, 콩고물이 묻어있는 떡들이 흐트러진 채 놓여 있었다. 신랑은 망가지지 않은 동그란 떡을 하나 집어 신부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자 달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먹어. 배고플까봐 챙겨 왔어.”


  신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랑을 한번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 종일 시달렸을 신랑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금 미안해져 입술을 지긋이 깨문 신부가 떡을 집어 신랑의 입에 하나 넣어주었다. 그러자 신랑 또한 입안 가득 고소한 떡을 씹으며 봄바람처럼 웃고 일어났다. 


  신랑은 신부의 뒤로 자리를 옮겨 그를 가득 껴안았다. 고개를 묻은 목덜미와 등에서는 은은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어깨 너머로 힐끗 바라보자, 신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떡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 행동이 못내 귀여워 신랑은 어쩔줄을 몰랐다. 그러다 신부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들을 톡톡 털어주었다. 


“토비오. 체해.”


  신랑은 신부의 허리춤에 둘러진 홍색 끈을 잡아 당기며 장난스레 말했다. 


“낭, 낭, 낭군.”


  신부가 뒤로 손을 뻗어 제지하며 신랑의 청색 끈을 꾹 잡았다. 목이 마릅니다. 오늘 밤 자신이 체한다면 떡이 아니라 신랑의 행동 탓이었다. 신랑은 신부의 마음을 금세 알아차리고 볼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그러자 목덜미까지 빨개질 정도로 열이 화끈화끈 올랐다. 


“식혜라도 주랴.”


  신부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신랑이 벌떡 일어나 문쪽으로 향했다. 답지 않게 부끄러움을 탄 신랑의 다급한 행동이었다. 문을 열자 훤칠한 신랑의 등 아래로 달빛이 확 쏟아졌다. 신부는 미묘한 감정에 콩고물을 가지런히 모아 떡이 든 주머니를 치웠다. 


  곧 문을 열고 식혜 그릇을 든 신랑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신랑의 얼굴은 형형한 달빛처럼 새하얗고 매끄러웠다. 신부는 무릎을 모아 신랑이 곁으로 올 때까지 고개를 폭 파묻었다. 신부가 부끄러운 듯 손만 뻗어 식혜를 마시는 동안, 신랑은 발갛게 달아오른 신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토비오, 오늘따라 말 수가 왜 이리 없어? 식 치르느라 힘들었구나.”


  신랑은 단단한 손을 뻗어 피곤했을 신부의 굳은 어깨를 주물거렸다. 신부의 동그란 어깨 끝을 문질거리던 신랑이 이내 손을 놓았고, 신부는 신랑을 향해 환히 웃음지었다. 새침하지도 않고 그저 신랑이 좋아 짓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신랑은 밤하늘을 꼭 빼닮은 신부의 눈동자를 아득하니 쳐다보다가 옷깃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은은한 달빛이 쏟아지는 밤, 신랑은 구름을 걷듯 사뿐한 손짓으로 신부의 고름을 풀었다. 그러자 앞섬이 열리고 하얀 살결이 보였다. 신랑 또한 낮 내내 고생한 덕에 녹초처럼 피곤한 상태였다. 무거운 두루마기를 벗으려던 신랑의 손가락 위로 신부의 손이 닿았다. 왜 벗겨주게. 신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랑의 옷을 푼 뒤 어깨 뒤로 넘겼다. 신랑은 그대로 비단침 위에 신부를 눕혔다. 그림자가 불빛에 하늘하늘 기울어졌다. 침실 사방으로 하얀 명주끈이 둘러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자자.”


  신랑은 그대로 신부 옆에 누워 팔베개를 했다. 신부는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내밀었다. 


“어르신이 첫날 밤은 그냥 자는 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괜찮아. 이게 무슨 첫날 밤이야. 한 수백 밤은 됐을거다.”


  고개를 돌려 씩 웃은 신랑이 신부의 이마를 쓸어 넘겼다. 신부는 자신이 뱉은 말과 달리 이미 졸음이 한껏 묻어난 표정으로 신랑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신랑은 신부의 뒷목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금침을 끌어 올려 신부의 목까지 덮어 주었다. 감겨진 신부의 속눈썹 위로 꿈결 같은 신랑의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아늑하고 따뜻한 기운이 신랑과 신부의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저 넘 졸려서..수정 낼 할게요.... 

오이카게 파다보니 별걸 다 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