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E A S O N
SERIAL SHORT DIARY BOOK GUEST



  토비오. 

  나 하나만 솔직하게 고백해도 돼?

  뭔데요.

  화내지 말기.

  ......들어 보고.

  나 반지 잃어버렸어.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가는 12월이었다. 창밖으로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티브이의 작은 소음 사이로 흐릿한 목소리가 굴러 떨어졌다. 무릎 위에 누운 토비오의 표정이 금세 찌푸러졌다. 표정을 풀지 않고 일어서며 토비오가 내 왼손을 만졌다. 나는 네번째 손가락을 바라보다 어색하게 웃었다. 


“어디서 잃어버렸어?”

“집에서.”

“찾을래.”

  

  토비오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박차고 일어나 주위를 서성거렸다. 아까까지 누워있던 무릎 위가 싸늘해졌다. 같이 자고 일어나는 침실에서부터 화장실, 거실 장식장, 소파 아래까지 찾아보는데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집에 오자마자 찾아 봤지. 나는 토비오를 졸졸 쫓아 다니며 구석 사이로 고개를 내민 갸름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많이 울상인 표정이다. 


  토비오가 다시 일어서서 허리에 손을 짚었다. 눈썹이 엄청 치켜 올라갔다.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옆구리를 만지작거리자 이내 강제로 손이 빠져 나왔다.


“손 내놔봐요.”

“왜?”

“씹어 먹게.”


  나를 삼킬 듯이 눈을 크게 뜨며 토비오가 얘기 했다. 다시 깍지를 끼다 내 왼손을 노려 보며 한숨을 쉰다. 끼고 다니던 반지는 우리가 만난지 10년째 되던 어느 날 토비오가 선물한 것이었다. 은색의 작은 링. 내 생일이 다가오던 여름 날, 인하이가 생각나지 않냐며 고요히 웃던 모습. 반지를 받았을 때 나는 어울리지 않게 대성통곡을 했다. 웃으며 반지를 끼워주던 토비오는 당황했다. 만난지는 오래 되었어도 같이 있던 날들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였기에 그 반지는 유독 의미가 있었다.


  공 만질 때 빼고는 늘 끼고 있던 반지가 사라지니 허전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다시 한번 말하려는 순간, 토비오가 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살짝 깨물었다. 잔소리가 쏟아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다시 맞출 때까지 이거 끼고 있어요.”


  토비오가 네번째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내 손가락에 끼웠다. 끼던 것보다 더 조여와서 웃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길래 소파에 앉혀 놓은 뒤, 부엌으로 혼자 들어가 분주하게 음식을 차리고 있자 어느샌가 토비오가 등 뒤로 다가왔다. 마른 손가락으로 허리를 만지더니 등에 고개를 콱 파묻어서 웅얼거렸다. 속상해. 퍽 무겁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국자를 들고 있던 손을 어쩌질 못했다. 


  밥을 먹으면서 맞은 편에 앉은 토비오를 자꾸 흘끔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냥 한 소리야. 걱정 돼서 보내는 시선인 줄 알았는지 밥을 먹다 나를 올려다 본다. 그냥 너 이뻐서 그러는건데. 토비오는 늘 밥을 맛있게 먹는다. 잘 먹어. 귀여워. 예뻐. 먹는 모습을 보면서 웃었더니 다시 눈을 크게 뜨면서 내 손가락을 노려본다. 


“천천히 먹어야지.”


  조금 급하게 먹는 습관이 있어 한 소릴 했더니 수저를 내려 놓고 식탁 위를 왼손으로 두드렸다. 나에게 반지를 빼 줘 어쩐지 허전해 보인다. 나는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무 말 없이 토비오의 손을 꽉 잡았다. 반지, 사실대로 말하면 혼날 것 같은데. 어제 일을 생각하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앞에서 밥 먹는 소리와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다 먹었는데.”

“…….”

“좀 놓지 그래요?”

“난 아직 다 안 먹었어.” 


  깊어 가는 12월의 겨울 밤이 어딘지 모르게 공허했다.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했을 때, 토비오의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격정적이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겨울 바람 사이로 우리 사이에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들이 하나 둘 씩 나부끼는 것 같다. 나는 토비오의 손가락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집에서 마지막으로 밥을 같이 먹은 이후로 삼일 만에 토비오를 다시 만났다. 그것도 자주 가는 카페에서. 동료들끼리 온건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내가 아는 척을 하자 손을 흔들어준다. 나는 익숙한 대학 후배들과 사석에서 몇번 만난 적 있는 낯선 이들에게 악수를 한 뒤 토비오 어깨에 손을 올렸다. 번화가의 소란스러운 카페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사람들의 말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숙소에서 잘거야?”

“시즌 하나 끝났는데 집에 가야죠.”


  알았어. 짤막하게 대답하는 동안 토비오의 버석하게 마른 입술이 눈에 걸렸다. 한겨울에도 잘 가라앉은 새카만 머리카락을 한번 흐트리다 더 말을 붙여볼 새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이따 보자. 네. 건조한 대화 속에서 토비오가 돌아보지 않고 눈을 깜박깜박 감았다 떴다. 나는 다시 멈춰 손끝으로 토비오의 팔을 잡고 돌렸다. 


  겨울 하늘은 한낮인데도 푸르스름하다. 테라스로 나와 나는 얇은 셔츠에 코트만을 걸친 토비오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춥게 왜 이렇게 입었어. 달싹거리던 입을 열자 옅은 향수 냄새가 바람에 불어왔다. 


“술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 와.”

“넹.”


  귀여워서 볼을 톡톡 쳐줬더니 눈을 마주친다. 견딜 수가 없이 마음이 일렁거렸다. 공을 만지지 않을 때도 까맣고 푸른 눈동자가 나를 보고 항성처럼 반짝일 지 몰랐다. 요즘의 토비오를 보면 무기력했던 과거의 감정들까지도 속 안에서 휘오리쳐 마음이 복잡했다. 특히나 최근들어 고민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며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같이 있는 시간이 부족한 탓일까, 계속 대화하고 싶고 바라보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차 끌고 왔어?”

“아니.”

“잠깐만 얘기한다고 하고 이리와.”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어둑한 적막을 깨는 발걸음 소리가 나란히 들렸다. 문을 열어서 안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우왁스럽게 토비오의 얼굴을 잡아 입술을 맞췄다. 쌉쌀한 커피향이 혀 뒤로 넘어갔다. 완전히 몸을 숙이고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출 동안 토비오가 더듬더듬 머리카락을 헤집다가 손을 내려 내 목을 안았다. 달콤한 입술이 천천히 달아오르며 뜨거워졌다. 정신없이 키스를 퍼붓자 그대로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이제는 능숙하게 키스를 받아 내고 때로 내게 오로지 뜨거운 감정들을 퍼붓는 토비오는 난폭하다. 나는 저릿한 심장을 부여 잡다가 허공에 시선을 두었던 눈동자를 깊이 맞추었다. 사랑해 마지 않는 너. 


  너는, 사계절 내내 너를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게 만들어. 하루하루 네 존재로 가득 차 있어서 가끔은 그게 버겁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며 보기로 했다. 귀찮은 내색이 여력했는데 주말이 지나고 3m 되는 트리가 배송되자 둘다 신난 마음에 집에 오자마자 트리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우리 키를 훨씬 넘는 트리에는 이미 노란빛 방울과 별들이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분명 서로가 없었더라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지 않았을 것이다. 


  토비오가 미리 사놓은 나머지 장식들을 꺼내 왔다. 장식을 걸면서 나는 장난을 쳤다. 너 양말이라도 걸어놔야 하는거 아니야? 토비오가 아무렇지 않게 발끈했다. 그래야겠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반지 달라고. 나는 할말이 없어져 어색하게 웃었다. 


  토비오가 화를 냈다. 전구를 왜 거기에 걸어? 그냥! 이렇게 둘러야죠! 알았어! 칭칭 두르고 나서 심통난 표정을 짓자 나보다 훨씬 험악한 표정을 지은 토비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분명히 중학교 시절에는 쪼그매가지고 나만 졸졸 쫓아왔는데. 얘 완전 어른 됐어. 키도 이만큼 크고 잘생겨지고. 세월을 같이 보냈는데도 알 수 없는 질투감에 화가 난다. 


  트리를 다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겨우살이를 위에 걸었다. 스위치를 켜자 트리의 전구가 노란 불빛을 냈다. 


“미슬토 아래서 키스 하면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대.”

“또 수작 부린다.” 


  얼굴을 확 가까이 가져갔더니 놀라서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열두시 다 된 것 같은데. 초조해져서 시계를 한번 흘끔 바라봤다. 같이 생일을 맞은게 일 이년도 아닌데 또 설렜다. 좋아하는 케익도 냉장고에 넣어놨고, 트리 아래서 키스를 하는 게 꽤 로맨틱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토비오의 빈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순간 속눈썹이 떨리면서 밤하늘 같은 동공이 크게 열렸다. 


“뭐야‥”

“좋아해, 토비오.”


  반지는 내가 주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나지. 손이 떨려왔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토비오 표정도 보지 못하고 그냥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놀란 것 같은데. 토비오 달래줘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서로 부딪히다 감정이 물밀듯이 더 크게 밀려와서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자 토비오가 팔을 뻗어다가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어렸을 땐 얼굴만 봐도 화가 났었는데 이젠 토비오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면 편안해진다. 


“나, 너 정말 좋아해.”

“…….”

“생일 축하해. 사랑해.”


  내 세상이 온통 너야. 


  고개를 서서히 들어 나는 오래도록 바라본 단정한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희미하게 어쩌면 하얗게 내리는 눈보다 더 환한 표정으로 토비오가 사랑스럽게 씩 웃었다. 짙은 속눈썹에 눈물 방울들이 매달려있다. 나는 참을 새도 없이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핥았다. 눈동자가 파도처럼 수없이 일렁이고, 나는 입술을 벌려 나를 달래는 입을 한꺼번에 삼켰다. 너랑 계속 같이 하고 싶어.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잠시 동안 반지가 없는 너를 바라볼 때마다 매서운 바람이 내 안을 가득 채워 견딜 수가 없었다.   


  너를 가득 사랑해. 











+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보여주자 토비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잡았다. 


“왜 반지가 두개야?” 

잃어버린 척 했지.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퍽이나. 아, 내가 사준거 어딨어요. 

“안 줄래. 이제부터 내가 준 거 끼고 다녀. 나도 내꺼 뺄게.

“그런게 어딨어!”


  예전 반지를 빼고 테이블 위에 올렸더니 씩씩 거리면서 다시 반지를 가져온다. 귀여워. 자기가 준거라고 챙기네.  


선물은?

내가 선물이지!!

어차피 내껀데. 

헉.


  토비오가 씩 웃으면서 말해서 내 심장에 화살이 한 백개 정도 꽂힌 것 같았다. 앞에서 운 건 어느새 잊고 토비오의 볼을 슬쩍 만져주다가 뒤에서 안았다. 신기한지 품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반지를 매만지는 토비오를 내려다보며 목덜미 뒤에 쪽쪽 입을 맞췄다. 그리고 한참 동안 생각 하다 말을 꺼냈다. 


“내가 널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나만 애타고 나만 기다리는 것 같아서.”


  그 말에 토비오가 미간을 찌푸리고 팔을 풀었다. 


“그런 말 하면 반지 빼버릴래.”

“…….”

“내가 예전에 쫓아다니면서 좋아한다고 했을 때, 싫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는데!”


  나는 할 말이 사라져서 입을 다물었다. 야, 그건 어렸을 때 일이고. 요즘은 매일 너 보고 싶고, 안고 싶단 말이야. 조금 투정을 부리면서 다시 안으려고 했더니 토비오가 내 손을 툭 치워냈다.  


“그리고 요즘 시즌 중이라 몸 상한다고 해달라고 해도 안해주고. 내가 더 억울하거든요? 또 반지 잃어버렸다는데 별 반응도 없어서 이제 나 질린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나 지금 토비오한테 혼나는 중인가? 눈을 굴리면서 눈치를 봤더니 토비오가 눈을 엄청 크게 뜨고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되는 고민 말하지 마요. 입술 콱 물어버릴거야.”


  분명 내가 먼저 투덜거렸던 것 같은데 어느새 상황이 역전 되어 내가 말도 못하고 당황스러워하자 토비오가 성큼 다가와 입을 맞췄다. 뭔가 토비오한테 인생을 저당 잡힌 것 같다. 나는 입술을 익숙하게 받아 들이다가 다시 입술을 떼고 토비오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십년 넘게 봐도 예쁘다. 아무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나는 눈을 갸름하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토비오의 입술을 다시 집어 삼키며 정신없이 셔츠를 벗겼다. 


 




사랑하는 토비오, 생일 축하해.

카게야마 토비오 생일 합작에 참여하였습니다. http://torytic.wix.com/hbdtob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