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E A S O N
SERIAL SHORT DIARY BOOK GUEST






  창 밖으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셔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연일 폭염이었다. 태양열을 피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온 이들도 있겠지만, 올해부터는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 탓에 실내도 그리 쾌적한 편은 못 되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다 우연히 눈동자에 차오르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멈췄다. 유리문 너머 활짝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남녀가 보였다. 나보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가 작을까. 키가 훤칠한 남자는 다소 인상을 찡그렸지만 즐거워보였다. 나는 오로지 그 남자에게만 눈길이 갔다. 도서관 주위를 둘러싼 녹음 속에서 가장 푸르게 빛나고 있는 너에게. 바람 한 줄기도 불지 않는 텁텁한 여름 날, 나는 그 광경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토비오. 


  그리고는 속으로 또 그 이름을 불러만 보았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중학교 후배였다. 또 시간이 흐르고 대학교 후배가 되었다. 선배와 후배. 우리 사이를 정의하기에는 충분한 단어였다. 이런 저런 말들을 덧붙일 수 있겠지만, 현재에 와선 쓸모 없는 일들이 되어버렸다. 학부도 전공도 다른 후배에게 시간을 쏟는 것 보다는 이번 여름까지 마무리 해야 할 프로젝트를 해치우는 게 당장 시급했다. 또 몇 개월 뒤면 시작될 인턴 생활도 내게 있어 큰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까까지만 해도 바쁘게 처리하던 일에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았다. 나의 눈과 손, 마음까지 모두 네가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날, 토비오는 커다란 손을 뻗어 그녀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부채질을 해주기도 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들이라면 어색해 보이기만 하는 그 움직임이 종종 옆에서 지켜봐 온 내게는 이제 익숙하고 덤덤한 일이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너는 어떤 사람과 연애를 할까.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래 전부터 너를 생각해오면서도 오히려 너에 대한 의심을 먼저 품었다. 그리고 너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제치고, 오롯하게 성장해서 너보다 두 뼘 더 작은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향해 웃는 너의 시원스러운 미소가 이제 어색하지 않다. 나는 손으로만 책장을 넘기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너를 바라본다. 나의 눈길은 언제나 너를 향했으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더 많은 것을 담아둘 걸 그랬다. 내가 아무리 앞서 나가도 너는 평생 모를 것이었으니. 나는 그녀를 보내고 곧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는 토비오를 보다가 우연히 눈을 마주친 척을 했다. 


“선배!”

“응.”


  이제 너와 나는 좋은 선후배다. 좋은 선후배라도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이 좋은지 평소보다 말수가 더 늘은 토비오는 먼저 대화를 걸며 자주 웃었다. 연애를 하는 토비오는 낯설다. 또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괜히 몇 년 뒤의 토비오와 그녀 사이의 관계를 점쳐 보기도 하고, 결혼을 상상해 보기도 하며 괴로움을 느꼈다. 그러다 깜깜하게 머릿속에서 정전이 일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턱을 괴면서 네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저번에 해주신 조언, 감사해요. 선배는 역시 다르네요. 여자들이 많이 좋아하고, 또 여자들 마음도 잘 알고. 그래서 인기가 많은가 봐요. 예전엔 그게 이해가 안 됐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 길고 긴 짝사랑도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감정을 깨달은 후 어색함에 몇 번이고 활짝 피어난 것을 접어 보았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생각했다. 마음이란 커지기도 하고 사그라들기도 하는 것이라서 지금은 너에게 흘러가는 순간뿐인 내 마음도 언젠가는 물이 말라가듯 서서히 멎어갈 것이라고. 그런데 그게 몇 주가 되었고, 몇 개월이 되었고, 수많은 계절들을 반복하다 몇 년이 되었다. 나를 잡아 먹는 반쪽짜리의 사랑은 시간이 흐를 수록 거대해지고 그에 비례해서 우울과 절망이라는 감정을 내 속에 싹틔워놓았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았다. 너에게 다 전하지도 못하는 마음이라면, 이렇게 내 그늘 안에서 영원히 갇혀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여자 친구는?”

“수업 있다고 먼저 들어갔어요.”

“아까 왜 밖에서 오래 서 있었어. 그러다 더위 먹는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체력이 약하죠?”

“아니, 너.”


  내가 하는 모든 얘기는 실로 너에게 향하는 것 뿐인데. 너에게는 모든 말들과 관심이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흘러가겠지. 나는 알면서도 오늘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만 덧붙이고 곱씹는다. 


“토비오.”

“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평생 닿을 수도 없는 관계라면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너의 이름을 입술에 담을 때마다 열이 나는 것처럼 화끈거리고 심장이 저렸지만 그래도 영영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토비오. 


  오늘도 나는 너를 사랑해.